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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겨울학교, 삿포로
삿포로는 일본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대도시이자, 선교의 가장 외로운 전선이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곳에 발을 디뎠지만, 대부분 오래 머물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곳은 ‘선교의 겨울’이 길기 때문이다. 눈이 6개월을 덮는 도시처럼, 복음의 씨앗도 쉽게움트지 않는다. 그래서 삿포로는 여전히 선교적으로 추운 지역이다. 복음의 불씨가 닿지 않는 도시가 아니라, 닿아도 쉽게 붙지 않는 도시이기 때문인 것 같다. 눈이 6개월 이상 덮이는 북방의 땅처럼, 이곳의 영혼은 천천히 움직이고, 변화는 느리며, 신앙은 쉽게 뿌리내리지 않는다. 일본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의 1% 미만이다. 3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같다. 복음주의 신자는 약 0.3% 수준에 머문다. 홋카이도의 인구는 약 500만 명이지만, 그중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기독교인은 2만 명이 되지 않는다. 삿포로에 정기적으로 모이는성도는 1만 명 이하. 교회의 절반 이상이 30명 미만의 소형 교회이며, 목회자의 70%가 60세 이상이다. 이 숫자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그것은 ‘정체’라는 이름의 현실이다. 일본은 지난 50년간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안정 속에서도 영적으로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종교는 개인의 내면으로 밀려나고, 교회는 사회 담론에서 사라졌다. 젊은 세대는 신앙에 무관심하며, 교회는 고령화로 인해 세대 단절의 위기를 맞고 있다. 삿포로의 한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의 복음화는 마치 얼음 위에 새싹을 심는 일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 얼음 밑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뿌리를 자라게 하십니다.” 일본의 문화는 신앙을 고백하기 어렵게 만든다. ‘조화(和)’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종교적 차이는 불편한 주제가 된다. ‘다름’은개인의 용기로 해석되지 않고, 관계의 위협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일본인에게 신앙은 삶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의 취향이 된다. “나는 무종교입니다.”라는 표현은 부정이 아니라 일종의 예의로 여겨진다. 홋카이도는 개척지의 자립정신이 강하다. 신에게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해결하려는 삶의 태도가 깊이 뿌리내려 있다. 이런 문화 속에서 복음은 ‘도움의 언어’가 아니라 ‘간섭의 언어’로 오해받기도 한다. 실제로 한 일본인 신자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를 믿는 건 좋은 일일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그 말은 너무 큰 소리처럼 들립니다.” 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선교는 논리나 설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복음은 ‘보여지는 삶’으로만 이해된다. 교회의 설교보다교인의 태도가, 전도의 말보다 일상의 성실함이 먼저 마음을 연다. 그러므로 삿포로의 복음은 말이 아니라 ‘관계’로, 논쟁이 아니라 ‘신뢰’로 자란다. OMF 선교회는 일본을 “가장 헌신적인 선교사들이 가장 빨리 지치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일본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의 평균 체류 기간은 5년 미만이다. 언어의 장벽, 관계의 거리,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많은 이들이 지쳐 나간다. 그러나 역사는늘 그 ‘남은 자’를 통해 이어져 왔다. 1876년, 삿포로 농학교의 미국인 교수 윌리엄 S. 클라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Boys, be ambitious for Christ.” 그 짧은 한 문장이 일본 교회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의 제자들이 ‘삿포로 밴드’를 세우고, 일본 최초의 기독교 운동을 시작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적은 수를 통해 시대를 바꾸신다. 삿포로는 다시 그 말씀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땅이다. 겨울은 생명을 죽이는 계절이 아니다. 단지 깊이 묻히게 하는 시간일 뿐이다. 삿포로의 선교는 그런 ‘하나님의 겨울학교’이다. 눈 덮인 땅속에서 씨앗은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서 뿌리가 자라고 있다. 빠른 결실을 원한다면 이 도시는 실망을 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속도보다 깊다. “눈은 덮지만, 생명을 막지 않는다.” 삿포로의 교회는 그 진리를 몸으로 배우는 곳이다.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도, 하나님은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복음은 멈춘것처럼 보일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삿포로의 선교는 포기의 이야기가 아니다. 방법은 ‘속도’가 아니라 ‘깊이’에 있다. 우선, 삿포로의 복음은 ‘교회 밖’에서 피어난다. 일본 문화는 일상 속의 미(美)와 조화(和)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복음이 단절이나 대립의 언어로 들릴 때 마음을 닫는다. 그러나 복음은 문화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회복시키는 언어이다. 삿포로는 눈의 도시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겨울의 고요함 속에서 사유하고, 눈의 균형과 절제 속에서 미를 발견한다. 일본인의 미의식은 단순히 장식적 취향이 아니라, ‘질서와 조화의 철학’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 복음은 항상 ‘서양의 종교’로 남는다. 복음이 이 땅에 뿌리내리려면, 그 아름다움의 언어로 다시 번역되어야 한다. 예배의 음악이 지역 예술과 만날 때, 교회의건축이 홋카이도의 자연과 어울릴 때, 복음은 낯선 교리가 아니라 익숙한 조화로 들린다. 예를 들어, 삿포로의 대표적 행사인 ‘눈 축제(Snow Festival)’에서 교회가 자원봉사나 예술적 참여로 시민과 연결될 때, 신앙은 종교가 아닌 공동체의 일부로 경험된다. 또한 일본의 차문화(茶道)는 ‘정화(靜化)’와 ‘존중(敬意)’의 정신을 담고 있다. 그안에 이미 복음의 본질이 숨어 있다 —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나누는 자리.” 따라서 교회는 일본 문화를 비판하기보다, 그 안에 깃든 ‘하나님의 흔적’을 발견해야 한다. 복음은 낯선 언어가 아니라, 인간의 아름다움을 완성시키는 언어이다. 그때 삿포로사람들은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삿포로의 교회가 자립하기 위해서는 ‘수입된 교회’에서 ‘토착된 교회’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 중심에는 현지 리더십의 세움이 있다. 일본 사회는 외부 권위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국인이나 서양 선교사가 아무리 헌신해도, 그들의 말은 “외부의 종교”라는 벽을 넘기 어렵다. 그러나 일본인 리더가 일본어로 설교하고, 일본적 사고로 복음을 해석할 때, 그 말은 내부의 언어가 된다. 이것은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언어의 문제다. 일본인은 직접적인 감정보다 암시적 표현을 중시하며, 논리보다 분위기를 통해 진심을 느낀다. 따라서 복음이 이들의 정서적 리듬 안에서 전달될 때 비로소 ‘이해’가 아닌 ‘공감’으로 변한다.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 삿포로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이 땅의 겨울은 끝이 아니라, 기다림의 계절이다. 우리는 오늘 눈 속에 씨를 묻는다. 그것이 곧 순종이며, 희망이다. “겨울의 신앙은 눈 아래에서 뿌리를 내린다. 눈은 덮을 뿐, 생명을 막지 못한다.” 삿포로의 부흥은 이 문장을 믿는 자들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봄은 늦게 오지만, 반드시 온다. 그리고 그 봄은, 겨울을 견딘 자들의 눈물 위에 피어나기 때문이다.
쿠르드 교회의 탄생과 한국교회의 역할
중동의 가장 복잡한 분쟁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시리아와 이라크, 그리고 그 일대에서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오랜 세월 ‘100% 무슬림 민족’으로 불렸던 쿠르드족 가운데 교회가 태동하고, 민족교회 지도자들이 세워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내전과 난민, 경제 위기 속에서 절망하던 이들에게 복음은 새로운 희망이 되었고, 이제 쿠르드 교회는 단순히 생존을 넘어 선교하는 교회로 변모하고 있다. 오는…
우간다 청년들이 깨어난다
아프리카의 심장,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조금 벗어난 한적한 마을. 이곳에 자리 잡은 Giving Tree Center는 이제 곧 청년 리더십 각성의 진원지가 될 것이다. 바로 GCLA(Global Coaching Leadership Association) 국제대표인 피터정(Peter Chung) 코치와 르완다의 Africa Transformation University 대학교의 부총장인 오규훈 코치가 이끄는 청년 리더십 훈련과 코칭식 리더십 캠프가 8월 중순, 이곳에서 개최되기 때문이다. 이 사역은 단순한…
우간다 루가지에서 피어난 청년리더십
아프리카의 심장,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서 조금 벗어난 루가지(Lugazi) 지역에서는 최근 놀라운 영적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8월 넷째 주에 열린 “청년 리더십 컨퍼런스(Youth Leadership Conference)”에서는 300여 명이 넘는 청년들이 함께 모여 찬양과 리더십 강습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발견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번 컨퍼런스에는 특별히 캐나다에 본부를 둔 GCLA(글로벌코칭리더십협회)의 국제대표인 피터정 코치와 르완다 키갈리에 위치한…
선교지 리더십 훈련, 권위와 학대 사이에서
최근 The Guardian이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청년 선교 단체 Youth With A Mission(YWAM) 내부에서 심각한 영적 학대와 권위 남용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공개적인 망신과 고백 강요, 성적 지향을 ‘치유한다’는 의식,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빙자한 권위적 통제가 이루어졌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일부 훈련생들은 고액의 훈련비와 조직적 통제 속에서 자율성을 잃고, 심지어 신앙 자체를…
마이크로 코칭시대
지난 20년이 넘도록 급성장을 해 온 코칭은 이제 리더들을 위한 리더십의 한 형식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담과 비슷한 방식으로 단기간부터 장기간에 걸쳐서 주제에 따라서 진행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쁜 현대사회에서는 때로는 그러한 기간과 방식이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즉 그 보다 훨씬 더 빠르게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 짐에 따라서 즉각적인 피드백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오늘은 그동안 전통적으로 진행해 온 일반 코칭에서 지금 시대에 오히려 더 적용하기 좋은 새로운 개념의 마이크로 코칭으로의 진화 과정 및 특징을 살펴보고, 특히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 깊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일반 코칭에서 마이크로 코칭으로의 진화 마이크로 코칭은 전통적인 코칭 방식에서 진화하여 등장한 혁신적인 접근 방식으로,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는 데 있어더욱 세밀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제공합니다. 전통적인 코칭은 보통 1시간 이상의 긴 세션을 통해 진행되며, 코치와 피코치간의 깊이 있는 대화와 분석을 중심으로 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종종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는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수있습니다. 반면, 마이크로 코칭은 짧고 빈번한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이 필요로 하는 즉각적인 지침과 피드백을 제공합니다. 이는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개인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마이크로 코칭의 정의와 특징 마이크로 코칭은 전통적인 코칭 방식과는 달리, 짧은 시간 안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전통적인 코칭이 기본적으로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면 마이크로 코칭은 그보다 짧은 5분간의 대화나 채팅, 음성 메모,텍스트 기반의 질문 등으로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교실에서 쓸 수 있는 코칭으로는 수업 내용이나 규모 등을 소규모로축소해 관찰자가 교사의 수업 내용을 관찰하고 분석해 더 나은 방안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이크로 코칭은 지난 팬데믹 이후 비즈니스와 교육 분야에서 더욱 확산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기술의 발전과 데이터 기반 접근 방식 덕분에 가능해졌습니다. 이제 코치는 피코치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그에 맞춘 맞춤형 지원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개인화’를 넘어 ‘초개인화’라는 새로운 트렌드로 발전하고 있으며, 각 개인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 됩니다. 마이크로 코칭의 필요성 현대 사회는 빠른 변화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코칭 방식이 개인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운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마이크로 코칭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필요합니다. ▶ 효율적인 학습: 학습 내용이나 기술을 소규모로 축소하여 세밀하게 관찰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 즉각적인 피드백: 과제나 문제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 개인이 신속하게 해결책을 도출하고 실행 계획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 유연한 접근: 짧고 빈번한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의 상황에 맞춘 맞춤형 지원이 가능합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의 현황 미국에서는 마이크로 코칭이 이미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활용되고 있습니다. 세계적 기업들의 CEO들은 마이크로 코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글과 애플의 경영진들은 마이크로 코칭을 통해 팀원들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는 기업 전체의 성과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마이크로 코칭이 교육 및 비즈니스 분야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팬데믹 이후 원격 교육과 디지털 학습의 증가에 힘입어 에듀테크와 결합하여 더욱 발전하고 있습니다. 미국 에듀테크 시장은 2025년까지 2,52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 이후에는 더욱 광범위하게 활용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양한 교육 방법과 기술이 통합된 결과일 것입니다. 마이크로 코칭은 특히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 두드러진 효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 학습 향상: 짧고 집중적인 학습 경험이 학생들의 참여와 성취도를 높이는 데 기여 할 수 있습니다. ▶ 직장 내 리더십 개발: 팀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앞으로의 전망 마이크로 코칭은 앞으로도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 경향이 강해짐에 따라, 각개인의 필요와 상황에 맞춘 맞춤형 코칭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데이터 분석 기술의 발전으로, 코치는 피코치의 행동패턴과 성향을 파악하여 보다 효과적인 지원을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마이크로 러닝(Micro Learning)과 결합하여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는 학습자가 짧은 시간 안에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중점을 두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로 코칭은 단순한 기술 향상을 넘어 개인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클레어 루트코우스키(Bentley Systems)의 수석 VP는 “사람들이 스스로 어떤 일을 원하는지 알지만 기회가 없을 때가 있다며, 이러한상황에서 길을 찾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마이크로 코칭이 단순한 직무 능력 향상을 넘어 개인의 삶에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마이크로 코칭은 현대 사회에서 필수적인 도구로 자리 잡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중요성과 활용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각 개인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이 혁신적인 접근 방식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합니다.
대만 선교탐정
대만 정탐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 사실은 – 대만 선교는 지금, ‘복음의 언어를 다시 배우는 과정’이라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복음은 보편적이지만 그 표현은 언제나 지역적이다. 하나님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시지만, 인간은 언어와 문화 안에서만 하나님을 이해한다. 그러므로 대만 선교의 본질을 단순하게 복음을 ‘전달’하는 데 두기 보다는, 복음이 현지인의 세계 속에서 다시 ‘태어나도록 돕는’ 영적 번역의 과정의 단계로 한 단계 더 올리는 것이 필요한 시기인것 같다. 대만은 아시아 복음화의 중요한 시험대다. 인구 약 2,330만 명 가운데 개신교인은 2.8%, 가톨릭을 포함해도 3-4% 선에 불과하다. 반면 불교 35%, 도교 33%, 민간신앙 20% 이상으로,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비(非)기독교 문화권에 속해 있는 실정이다. 대만의 종교 지도자들은 약 30만 명에 이르며, 그중 기독교 관련 지도자는 1% 수준에 불과하다. 복음은 존재하지만, 문화적으로 ‘주류 언어’가 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선교의 방향을 보여준다. 대만에서는 복음을 “진리의 논리”로 제시할 때보다 “관계의 언어”로 풀어낼 때 문이 열린다. 이 사실은 대만 사람들이 교리보다 신뢰를, 설득보다 공감을 먼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대만에서는 선교가 이론이 아니라 관계로 들어갈 때 복음은 흐른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차를 함께 마시며 서로를 나누고, 명절의 풍속을 이해하려고 해야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 자리에서 복음은 자연스럽게 피어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만에서의 오늘의 선교는 ‘정답을 전하는 선교’만 해서는 관계만 더 이상해지고 복음은 흘러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먼저 그 무엇보다도, ‘관계를 세우는 선교’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은 논쟁의 주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흘러가는 생명의 언어라는 사실이 대만의 사회에서는 더 잘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인간의 언어로 오신 것처럼, 대만 선교의 핵심은 성육신적 접근이 보다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즉, 대만의 문화와 정서, 언어의결 속에 들어가 복음이 그들의 감각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탐 결과 많은 선교사들이 ‘현지화(Localization)’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문화의 표면에 머무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언어를 배우고, 음식을 나누고, 의례를 관찰하는 수준의 적응은 문화적 친화일 뿐 내재화는 아닌 것이다. 복음이 문화 속으로 깊이 스며들려면, 현지화의 한계를 넘어 문화의 내재화(Inculturation)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적응이 아니라 ‘의미의 번역’이다. 이렇게 복음의 본질을 변하지 않게 하면서도, 표현은 대만적 맥락 속에서 새롭게 탄생시키는 일에 더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예를 들어, 대만의 제사 문화는 그 대표적 예다. 외부에서는 조상숭배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감사와 기억’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가 있다. 복음은 그것을 정죄하기보다, 그 안의 의미를 회복시킬 수 있다. “감사의 제사”로서의 예배, “기억과 은혜”의신앙으로서의 기독교적 재해석은 대만 문화 속에서 복음이 스스로를 번역해내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이때 복음은 낯선 종교가 아니라 ‘그들의 실재 이야기’가 될 것이다. 복음의 내재화는 언어의 문제이기도 하다. 단순히 중국어나 대만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가 품고 있는 정서의 결을읽는 것이다. 대만어의 “慢慢來(만만라이, 천천히 하자)”라는 표현처럼, 대만 문화는 서두르지 않고 관계를 쌓아가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복음이라는 언어는 어떠할까? 역시 복음도 그렇게 “천천히 스며드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빠른회심보다 깊은 뿌리를 목표로 하는 것이 전략적이며, 지속가능하다. 통계적으로도 이러한 접근은 효과적이다. 최근 대만 내 한 조사에 따르면, 관계 중심형 선교(relationship-based ministry)를경험한 이들의 복음 수용률은 일반 전도 대상자보다 약 3.5배 높게 나타났다. 또한 공동체 중심 선교에 참여한 청년층(20~35세)의 지속적 교회 참여율은 62%로, 이벤트 중심 전도(단기 사역) 참여자의 18%를 크게 웃돌았다. 이러한 숫자는 분명히 말해준다 — 즉, 사람들은 관계에서 복음을 받아드린다는 것이다. 문화의 내재화는 또한 사회적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대만은 고령화율이 18%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했고, 청년 세대의취업 불안과 도시 외로움이 심화되고 있다. 원주민 지역은 교육·빈곤·문화 단절 문제로 신앙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복음은 단지 개인 구원의 메시지가 아니라, 공동체 회복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교회가 사회의 상처를 끌어안는 통전적(Integral) 선교로 나아갈 때, 복음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한다. 이를 위한 전략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첫째, 도시형 청년 선교 모델이 필요하다. 카페, 팟캐스트, 유튜브, 미디어 아트 등에서복음이 ‘문화 콘텐츠’로 번역되어야 한다. 감성 중심의 대만 청년들에게 교회는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다가가야 한다. 둘째, 원주민 지역 사역은 공동체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예배보다 교육, 가르침보다 함께 살아가는 모델이 우선이다. 셋째, 리더십 전환이 필요하다. 외국 선교사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현지 지도자(Indigenous leadership)를 세우는 것이 장기 전략의 핵심이다. 현재 대만 기독교 지도자 중 현지 출신은 약 64% 수준이지만, 농촌 지역에서는 30%에 그친다. 향후 10년 내8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넷째, 교회 간 네트워크 협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한국, 일본, 동남아 교회가 자원을 나누고 공동 훈련을 실시하는 아시아 선교 허브 구축이 절실하다. 결국, 대만 선교의 본질은 빠른 성장보다 깊은 ‘내재화’ 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이 이론으로 제시될 때는 거부되지만, 관계와 문화로 흘러갈 때 사람들의 마음이 더 열리기 때문이다. 복음이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상징으로, 그들의 삶의 리듬 속에서 증언될 때, 그것은 외래 종교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가 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복음이라는 것은 단지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번역되고, 공동체 속에 내재화될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는 점을볼 때 – 대만 선교는 더이상 단지 복음을 가르치는 일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 땅의 언어로 말씀하신다는 점을 기억하고, 대만의 문화와 노래와 눈물 속에서도 하나님 자신을 드러낼 것이기에, 우리는 그들의 말로, 그들의 노래로, 그들의 눈물로 나는 다시 태어나도록 돕고 그 길을 개척해야 할 것이다.
나이지리아, 피로 물든 신앙의 땅
나이지리아의 플래토 주(Plateau State)는 다시금 눈물과 피로 얼룩졌다. 지난 한 달여 사이에만 최소 44명의 기독교인이 목숨을 잃었다. 8월 4일, 무슬림 풀라니 유목민들이 Njin 마을을 습격해 한 기독교 여성을 살해한 사건은, 단순한 한 마을의 비극이 아니라 나이지리아 전역에서 반복되고 있는 신앙 공동체의 상처를 보여준다. 7월 15일에는 Bokkos 지역에서 두 명의 기독교인이 매복 공격을 당한 뒤 시신이…
올해 가장 주목해 봐야 할 코칭 리더십 책은 아마도 피터정 코치와 동역자들이 함께 참여해 새롭게 출간한 『질문의 기술 – 대답보다 질문을 선택한 사람들』일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코칭 기법이나 대화 스킬을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 질문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과 공동체의 방향까지 바꾸는지를 깊이 있게 보여 준다. 우리는 늘 정답을 찾으며 살아가지만, 진정한 변화는 정답이 아니라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대만 선교탐정
대만 정탐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 사실은 – 대만 선교는 지금, ‘복음의 언어를 다시 배우는 과정’이라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복음은 보편적이지만 그 표현은 언제나 지역적이다. 하나님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시지만, 인간은 언어와 문화 안에서만 하나님을 이해한다. 그러므로 대만 선교의 본질을 단순하게 복음을 ‘전달’하는 데 두기 보다는, 복음이 현지인의 세계 속에서 다시 ‘태어나도록 돕는’ 영적 번역의 과정의 단계로 한 단계 더 올리는 것이 필요한 시기인것 같다. 대만은 아시아 복음화의 중요한 시험대다. 인구 약 2,330만 명 가운데 개신교인은 2.8%, 가톨릭을 포함해도 3-4% 선에 불과하다. 반면 불교 35%, 도교 33%, 민간신앙 20% 이상으로,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비(非)기독교 문화권에 속해 있는 실정이다. 대만의 종교 지도자들은 약 30만 명에 이르며, 그중 기독교 관련 지도자는 1% 수준에 불과하다. 복음은 존재하지만, 문화적으로 ‘주류 언어’가 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선교의 방향을 보여준다. 대만에서는 복음을 “진리의 논리”로 제시할 때보다 “관계의 언어”로 풀어낼 때 문이 열린다. 이 사실은 대만 사람들이 교리보다 신뢰를, 설득보다 공감을 먼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대만에서는 선교가 이론이 아니라 관계로 들어갈 때 복음은 흐른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차를 함께 마시며 서로를 나누고, 명절의 풍속을 이해하려고 해야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 자리에서 복음은 자연스럽게 피어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만에서의 오늘의 선교는 ‘정답을 전하는 선교’만 해서는 관계만 더 이상해지고 복음은 흘러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먼저 그 무엇보다도, ‘관계를 세우는 선교’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은 논쟁의 주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흘러가는 생명의 언어라는 사실이 대만의 사회에서는 더 잘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인간의 언어로 오신 것처럼, 대만 선교의 핵심은 성육신적 접근이 보다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즉, 대만의 문화와 정서, 언어의결 속에 들어가 복음이 그들의 감각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탐 결과 많은 선교사들이 ‘현지화(Localization)’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문화의 표면에 머무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언어를 배우고, 음식을 나누고, 의례를 관찰하는 수준의 적응은 문화적 친화일 뿐 내재화는 아닌 것이다. 복음이 문화 속으로 깊이 스며들려면, 현지화의 한계를 넘어 문화의 내재화(Inculturation)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적응이 아니라 ‘의미의 번역’이다. 이렇게 복음의 본질을 변하지 않게 하면서도, 표현은 대만적 맥락 속에서 새롭게 탄생시키는 일에 더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예를 들어, 대만의 제사 문화는 그 대표적 예다. 외부에서는 조상숭배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감사와 기억’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가 있다. 복음은 그것을 정죄하기보다, 그 안의 의미를 회복시킬 수 있다. “감사의 제사”로서의 예배, “기억과 은혜”의신앙으로서의 기독교적 재해석은 대만 문화 속에서 복음이 스스로를 번역해내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이때 복음은 낯선 종교가 아니라 ‘그들의 실재 이야기’가 될 것이다. 복음의 내재화는 언어의 문제이기도 하다. 단순히 중국어나 대만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가 품고 있는 정서의 결을읽는 것이다. 대만어의 “慢慢來(만만라이, 천천히 하자)”라는 표현처럼, 대만 문화는 서두르지 않고 관계를 쌓아가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복음이라는 언어는 어떠할까? 역시 복음도 그렇게 “천천히 스며드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빠른회심보다 깊은 뿌리를 목표로 하는 것이 전략적이며, 지속가능하다. 통계적으로도 이러한 접근은 효과적이다. 최근 대만 내 한 조사에 따르면, 관계 중심형 선교(relationship-based ministry)를경험한 이들의 복음 수용률은 일반 전도 대상자보다 약 3.5배 높게 나타났다. 또한 공동체 중심 선교에 참여한 청년층(20~35세)의 지속적 교회 참여율은 62%로, 이벤트 중심 전도(단기 사역) 참여자의 18%를 크게 웃돌았다. 이러한 숫자는 분명히 말해준다 — 즉, 사람들은 관계에서 복음을 받아드린다는 것이다. 문화의 내재화는 또한 사회적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대만은 고령화율이 18%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했고, 청년 세대의취업 불안과 도시 외로움이 심화되고 있다. 원주민 지역은 교육·빈곤·문화 단절 문제로 신앙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복음은 단지 개인 구원의 메시지가 아니라, 공동체 회복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교회가 사회의 상처를 끌어안는 통전적(Integral) 선교로 나아갈 때, 복음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한다. 이를 위한 전략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첫째, 도시형 청년 선교 모델이 필요하다. 카페, 팟캐스트, 유튜브, 미디어 아트 등에서복음이 ‘문화 콘텐츠’로 번역되어야 한다. 감성 중심의 대만 청년들에게 교회는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다가가야 한다. 둘째, 원주민 지역 사역은 공동체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예배보다 교육, 가르침보다 함께 살아가는 모델이 우선이다. 셋째, 리더십 전환이 필요하다. 외국 선교사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현지 지도자(Indigenous leadership)를 세우는 것이 장기 전략의 핵심이다. 현재 대만 기독교 지도자 중 현지 출신은 약 64% 수준이지만, 농촌 지역에서는 30%에 그친다. 향후 10년 내8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넷째, 교회 간 네트워크 협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한국, 일본, 동남아 교회가 자원을 나누고 공동 훈련을 실시하는 아시아 선교 허브 구축이 절실하다. 결국, 대만 선교의 본질은 빠른 성장보다 깊은 ‘내재화’ 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이 이론으로 제시될 때는 거부되지만, 관계와 문화로 흘러갈 때 사람들의 마음이 더 열리기 때문이다. 복음이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상징으로, 그들의 삶의 리듬 속에서 증언될 때, 그것은 외래 종교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가 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복음이라는 것은 단지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번역되고, 공동체 속에 내재화될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는 점을볼 때 – 대만 선교는 더이상 단지 복음을 가르치는 일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 땅의 언어로 말씀하신다는 점을 기억하고, 대만의 문화와 노래와 눈물 속에서도 하나님 자신을 드러낼 것이기에, 우리는 그들의 말로, 그들의 노래로, 그들의 눈물로 나는 다시 태어나도록 돕고 그 길을 개척해야 할 것이다.

피로 물든 사하라 이남, 복음의 울음소리
최근 백악관이 발표한 보고에 따르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기독교인을 겨냥한 공격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슬람국가(IS)와 연계된 무장 세력들이 배후에 있으며, 국무부와 협력해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벌어지는 참상은 수치와 통계로 다 담아낼 수 없는 비극이다. 이 지역은 오래전부터 복음이 뿌리내린 땅이다. 나이지리아, 부르키나파소, 말리, 차드, 니제르 등은 오랫동안 기독교와 이슬람이 공존해왔다.…

GCLA 새로운 책에 대해서
7월 벌써 후끈한 시절이 왔다. 이 더운 날에 GCLA의 국제대표인 피터정 코치를 만나고 왔다. 현재 GCLA에서는 새로운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 책은 2030 시대를 인도할 리더들을 위한 책이라고 한다. 실재로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 나오는 책에 대해서 상당히 기대하고 있어서, 미리 그 책을 주로 담당하고 있는 피터정 대표를 만나게 되었다. 오늘은 그 책에 대해서 간단한…

시리아 다마스쿠스 교회 자살폭탄 테러
2025년 6월 22일,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위치한 Mar Elias 그리스 정교회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주일 오전 성찬예배(Liturgy) 도중 일어난 이 비극적인 공격은 성도들의 평화로운 예배를 단숨에 공포로 바꾸었고, 현장에서 최소 30명이 사망했으며 54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테러의 배후로는 극단주의 무장세력 IS(이슬람국가)가 지목되고 있다. 이 사건은 시리아 내전 이후 발생한 기독교 대상 공격 중 가장 치명적인…

바세코에 떠오른 부흥의 횃불
2025년 6월, 필리핀 마닐라 근처에서 작은 기적이 벌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빈민가 중 하나로 알려진 바세코(BASECO) 지역에서, 수많은 청년과 청소년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가난과 절망, 그리고 영적 무관심 속에 잠들어 있던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눈을 뜨고, 마음을 열고, 무릎을 꿇었다. 이 일은 단지 청소년을 위한 행사가 아니었다. 이것은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회복의 선포였고, 성령의 불길이…

크리스천 퀘스천(질문) 세미나
글로벌 리더들을 위한 리더십 훈련 및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는 캐나다 사단법인인 GCLA에서는 이번에는 한국 시간으로 4월 7일 저녁에 크리스천 리더들에게 큰 도전이 될 <탁월한 리더를 만드는 퀘스천 훈련>을 진행한다. 이번 세미나의 제목은 “크리스천 리더들이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들”이다. 크리스천 리더들이 던지는 질문은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까? 일반인들도 분명히 질문이라는 툴을 잘 사용해야 하겠지만, 만일 당신이 크리스천…

언어코칭 세미나
코칭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캐나다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글로벌코칭리더십협회(GCLA)에서 2025년도 첫 세미나로서 <언어코칭 세미나>라는 제목으로 (한국시간) 2월 17일 월요일 오후 8시에 열기로 준비했다는 소식이다. 이곳에서는 작은 선물을 크리스천 코치들에게 주기로 했는데 그 내용은 우리가 평소에 쓰는 언어에 관련된 것들이다. 특별히 크리스천 코치들의 언어에는 힘과 능력이 있음을 이야기 하면서 코치로서 어떠한 언어들을 사용해야…

마이크로 코칭시대
지난 20년이 넘도록 급성장을 해 온 코칭은 이제 리더들을 위한 리더십의 한 형식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담과 비슷한 방식으로 단기간부터 장기간에 걸쳐서 주제에 따라서 진행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쁜 현대사회에서는 때로는 그러한 기간과 방식이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즉 그 보다 훨씬 더 빠르게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 짐에 따라서 즉각적인 피드백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오늘은 그동안 전통적으로 진행해 온 일반 코칭에서 지금 시대에 오히려 더 적용하기 좋은 새로운 개념의 마이크로 코칭으로의 진화 과정 및 특징을 살펴보고, 특히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 깊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일반 코칭에서 마이크로 코칭으로의 진화 마이크로 코칭은 전통적인 코칭 방식에서 진화하여 등장한 혁신적인 접근 방식으로,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는 데 있어더욱 세밀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제공합니다. 전통적인 코칭은 보통 1시간 이상의 긴 세션을 통해 진행되며, 코치와 피코치간의 깊이 있는 대화와 분석을 중심으로 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종종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는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수있습니다. 반면, 마이크로 코칭은 짧고 빈번한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이 필요로 하는 즉각적인 지침과 피드백을 제공합니다. 이는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개인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마이크로 코칭의 정의와 특징 마이크로 코칭은 전통적인 코칭 방식과는 달리, 짧은 시간 안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전통적인 코칭이 기본적으로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면 마이크로 코칭은 그보다 짧은 5분간의 대화나 채팅, 음성 메모,텍스트 기반의 질문 등으로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교실에서 쓸 수 있는 코칭으로는 수업 내용이나 규모 등을 소규모로축소해 관찰자가 교사의 수업 내용을 관찰하고 분석해 더 나은 방안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이크로 코칭은 지난 팬데믹 이후 비즈니스와 교육 분야에서 더욱 확산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기술의 발전과 데이터 기반 접근 방식 덕분에 가능해졌습니다. 이제 코치는 피코치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그에 맞춘 맞춤형 지원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개인화’를 넘어 ‘초개인화’라는 새로운 트렌드로 발전하고 있으며, 각 개인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 됩니다. 마이크로 코칭의 필요성 현대 사회는 빠른 변화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코칭 방식이 개인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운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마이크로 코칭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필요합니다. ▶ 효율적인 학습: 학습 내용이나 기술을 소규모로 축소하여 세밀하게 관찰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 즉각적인 피드백: 과제나 문제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 개인이 신속하게 해결책을 도출하고 실행 계획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 유연한 접근: 짧고 빈번한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의 상황에 맞춘 맞춤형 지원이 가능합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의 현황 미국에서는 마이크로 코칭이 이미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활용되고 있습니다. 세계적 기업들의 CEO들은 마이크로 코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글과 애플의 경영진들은 마이크로 코칭을 통해 팀원들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는 기업 전체의 성과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마이크로 코칭이 교육 및 비즈니스 분야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팬데믹 이후 원격 교육과 디지털 학습의 증가에 힘입어 에듀테크와 결합하여 더욱 발전하고 있습니다. 미국 에듀테크 시장은 2025년까지 2,52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 이후에는 더욱 광범위하게 활용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양한 교육 방법과 기술이 통합된 결과일 것입니다. 마이크로 코칭은 특히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 두드러진 효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 학습 향상: 짧고 집중적인 학습 경험이 학생들의 참여와 성취도를 높이는 데 기여 할 수 있습니다. ▶ 직장 내 리더십 개발: 팀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앞으로의 전망 마이크로 코칭은 앞으로도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 경향이 강해짐에 따라, 각개인의 필요와 상황에 맞춘 맞춤형 코칭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데이터 분석 기술의 발전으로, 코치는 피코치의 행동패턴과 성향을 파악하여 보다 효과적인 지원을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마이크로 러닝(Micro Learning)과 결합하여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는 학습자가 짧은 시간 안에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중점을 두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로 코칭은 단순한 기술 향상을 넘어 개인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클레어 루트코우스키(Bentley Systems)의 수석 VP는 “사람들이 스스로 어떤 일을 원하는지 알지만 기회가 없을 때가 있다며, 이러한상황에서 길을 찾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마이크로 코칭이 단순한 직무 능력 향상을 넘어 개인의 삶에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마이크로 코칭은 현대 사회에서 필수적인 도구로 자리 잡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중요성과 활용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각 개인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이 혁신적인 접근 방식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의 겨울학교, 삿포로
삿포로는 일본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대도시이자, 선교의 가장 외로운 전선이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곳에 발을 디뎠지만, 대부분 오래 머물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곳은 ‘선교의 겨울’이 길기 때문이다. 눈이 6개월을 덮는 도시처럼, 복음의 씨앗도 쉽게움트지 않는다. 그래서 삿포로는 여전히 선교적으로 추운 지역이다. 복음의 불씨가 닿지 않는 도시가 아니라, 닿아도 쉽게 붙지 않는 도시이기 때문인 것 같다. 눈이 6개월 이상 덮이는 북방의 땅처럼, 이곳의 영혼은 천천히 움직이고, 변화는 느리며, 신앙은 쉽게 뿌리내리지 않는다. 일본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의 1% 미만이다. 3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같다. 복음주의 신자는 약 0.3% 수준에 머문다. 홋카이도의 인구는 약 500만 명이지만, 그중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기독교인은 2만 명이 되지 않는다. 삿포로에 정기적으로 모이는성도는 1만 명 이하. 교회의 절반 이상이 30명 미만의 소형 교회이며, 목회자의 70%가 60세 이상이다. 이 숫자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그것은 ‘정체’라는 이름의 현실이다. 일본은 지난 50년간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안정 속에서도 영적으로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종교는 개인의 내면으로 밀려나고, 교회는 사회 담론에서 사라졌다. 젊은 세대는 신앙에 무관심하며, 교회는 고령화로 인해 세대 단절의 위기를 맞고 있다. 삿포로의 한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의 복음화는 마치 얼음 위에 새싹을 심는 일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 얼음 밑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뿌리를 자라게 하십니다.” 일본의 문화는 신앙을 고백하기 어렵게 만든다. ‘조화(和)’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종교적 차이는 불편한 주제가 된다. ‘다름’은개인의 용기로 해석되지 않고, 관계의 위협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일본인에게 신앙은 삶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의 취향이 된다. “나는 무종교입니다.”라는 표현은 부정이 아니라 일종의 예의로 여겨진다. 홋카이도는 개척지의 자립정신이 강하다. 신에게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해결하려는 삶의 태도가 깊이 뿌리내려 있다. 이런 문화 속에서 복음은 ‘도움의 언어’가 아니라 ‘간섭의 언어’로 오해받기도 한다. 실제로 한 일본인 신자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를 믿는 건 좋은 일일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그 말은 너무 큰 소리처럼 들립니다.” 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선교는 논리나 설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복음은 ‘보여지는 삶’으로만 이해된다. 교회의 설교보다교인의 태도가, 전도의 말보다 일상의 성실함이 먼저 마음을 연다. 그러므로 삿포로의 복음은 말이 아니라 ‘관계’로, 논쟁이 아니라 ‘신뢰’로 자란다. OMF 선교회는 일본을 “가장 헌신적인 선교사들이 가장 빨리 지치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일본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의 평균 체류 기간은 5년 미만이다. 언어의 장벽, 관계의 거리,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많은 이들이 지쳐 나간다. 그러나 역사는늘 그 ‘남은 자’를 통해 이어져 왔다. 1876년, 삿포로 농학교의 미국인 교수 윌리엄 S. 클라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Boys, be ambitious for Christ.” 그 짧은 한 문장이 일본 교회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의 제자들이 ‘삿포로 밴드’를 세우고, 일본 최초의 기독교 운동을 시작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적은 수를 통해 시대를 바꾸신다. 삿포로는 다시 그 말씀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땅이다. 겨울은 생명을 죽이는 계절이 아니다. 단지 깊이 묻히게 하는 시간일 뿐이다. 삿포로의 선교는 그런 ‘하나님의 겨울학교’이다. 눈 덮인 땅속에서 씨앗은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서 뿌리가 자라고 있다. 빠른 결실을 원한다면 이 도시는 실망을 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속도보다 깊다. “눈은 덮지만, 생명을 막지 않는다.” 삿포로의 교회는 그 진리를 몸으로 배우는 곳이다.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도, 하나님은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복음은 멈춘것처럼 보일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삿포로의 선교는 포기의 이야기가 아니다. 방법은 ‘속도’가 아니라 ‘깊이’에 있다. 우선, 삿포로의 복음은 ‘교회 밖’에서 피어난다. 일본 문화는 일상 속의 미(美)와 조화(和)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복음이 단절이나 대립의 언어로 들릴 때 마음을 닫는다. 그러나 복음은 문화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회복시키는 언어이다. 삿포로는 눈의 도시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겨울의 고요함 속에서 사유하고, 눈의 균형과 절제 속에서 미를 발견한다. 일본인의 미의식은 단순히 장식적 취향이 아니라, ‘질서와 조화의 철학’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 복음은 항상 ‘서양의 종교’로 남는다. 복음이 이 땅에 뿌리내리려면, 그 아름다움의 언어로 다시 번역되어야 한다. 예배의 음악이 지역 예술과 만날 때, 교회의건축이 홋카이도의 자연과 어울릴 때, 복음은 낯선 교리가 아니라 익숙한 조화로 들린다. 예를 들어, 삿포로의 대표적 행사인 ‘눈 축제(Snow Festival)’에서 교회가 자원봉사나 예술적 참여로 시민과 연결될 때, 신앙은 종교가 아닌 공동체의 일부로 경험된다. 또한 일본의 차문화(茶道)는 ‘정화(靜化)’와 ‘존중(敬意)’의 정신을 담고 있다. 그안에 이미 복음의 본질이 숨어 있다 —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나누는 자리.” 따라서 교회는 일본 문화를 비판하기보다, 그 안에 깃든 ‘하나님의 흔적’을 발견해야 한다. 복음은 낯선 언어가 아니라, 인간의 아름다움을 완성시키는 언어이다. 그때 삿포로사람들은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삿포로의 교회가 자립하기 위해서는 ‘수입된 교회’에서 ‘토착된 교회’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 중심에는 현지 리더십의 세움이 있다. 일본 사회는 외부 권위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국인이나 서양 선교사가 아무리 헌신해도, 그들의 말은 “외부의 종교”라는 벽을 넘기 어렵다. 그러나 일본인 리더가 일본어로 설교하고, 일본적 사고로 복음을 해석할 때, 그 말은 내부의 언어가 된다. 이것은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언어의 문제다. 일본인은 직접적인 감정보다 암시적 표현을 중시하며, 논리보다 분위기를 통해 진심을 느낀다. 따라서 복음이 이들의 정서적 리듬 안에서 전달될 때 비로소 ‘이해’가 아닌 ‘공감’으로 변한다.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 삿포로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이 땅의 겨울은 끝이 아니라, 기다림의 계절이다. 우리는 오늘 눈 속에 씨를 묻는다. 그것이 곧 순종이며, 희망이다. “겨울의 신앙은 눈 아래에서 뿌리를 내린다. 눈은 덮을 뿐, 생명을 막지 못한다.” 삿포로의 부흥은 이 문장을 믿는 자들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봄은 늦게 오지만, 반드시 온다. 그리고 그 봄은, 겨울을 견딘 자들의 눈물 위에 피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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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겨울학교, 삿포로
삿포로는 일본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대도시이자, 선교의 가장 외로운 전선이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곳에 발을 디뎠지만, 대부분 오래 머물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곳은 ‘선교의 겨울’이 길기 때문이다. 눈이 6개월을 덮는 도시처럼, 복음의 씨앗도 쉽게움트지 않는다. 그래서 삿포로는 여전히 선교적으로 추운 지역이다. 복음의 불씨가 닿지 않는 도시가 아니라, 닿아도 쉽게 붙지 않는 도시이기 때문인 것 같다. 눈이 6개월 이상 덮이는 북방의 땅처럼, 이곳의 영혼은 천천히 움직이고, 변화는 느리며, 신앙은 쉽게 뿌리내리지 않는다. 일본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의 1% 미만이다. 3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같다. 복음주의 신자는 약 0.3% 수준에 머문다. 홋카이도의 인구는 약 500만 명이지만, 그중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기독교인은 2만 명이 되지 않는다. 삿포로에 정기적으로 모이는성도는 1만 명 이하. 교회의 절반 이상이 30명 미만의 소형 교회이며, 목회자의 70%가 60세 이상이다. 이 숫자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그것은 ‘정체’라는 이름의 현실이다. 일본은 지난 50년간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안정 속에서도 영적으로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종교는 개인의 내면으로 밀려나고, 교회는 사회 담론에서 사라졌다. 젊은 세대는 신앙에 무관심하며, 교회는 고령화로 인해 세대 단절의 위기를 맞고 있다. 삿포로의 한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의 복음화는 마치 얼음 위에 새싹을 심는 일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 얼음 밑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뿌리를 자라게 하십니다.” 일본의 문화는 신앙을 고백하기 어렵게 만든다. ‘조화(和)’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종교적 차이는 불편한 주제가 된다. ‘다름’은개인의 용기로 해석되지 않고, 관계의 위협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일본인에게 신앙은 삶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의 취향이 된다. “나는 무종교입니다.”라는 표현은 부정이 아니라 일종의 예의로 여겨진다. 홋카이도는 개척지의 자립정신이 강하다. 신에게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해결하려는 삶의 태도가 깊이 뿌리내려 있다. 이런 문화 속에서 복음은 ‘도움의 언어’가 아니라 ‘간섭의 언어’로 오해받기도 한다. 실제로 한 일본인 신자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를 믿는 건 좋은 일일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그 말은 너무 큰 소리처럼 들립니다.” 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선교는 논리나 설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복음은 ‘보여지는 삶’으로만 이해된다. 교회의 설교보다교인의 태도가, 전도의 말보다 일상의 성실함이 먼저 마음을 연다. 그러므로 삿포로의 복음은 말이 아니라 ‘관계’로, 논쟁이 아니라 ‘신뢰’로 자란다. OMF 선교회는 일본을 “가장 헌신적인 선교사들이 가장 빨리 지치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일본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의 평균 체류 기간은 5년 미만이다. 언어의 장벽, 관계의 거리,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많은 이들이 지쳐 나간다. 그러나 역사는늘 그 ‘남은 자’를 통해 이어져 왔다. 1876년, 삿포로 농학교의 미국인 교수 윌리엄 S. 클라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Boys, be ambitious for Christ.” 그 짧은 한 문장이 일본 교회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의 제자들이 ‘삿포로 밴드’를 세우고, 일본 최초의 기독교 운동을 시작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적은 수를 통해 시대를 바꾸신다. 삿포로는 다시 그 말씀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땅이다. 겨울은 생명을 죽이는 계절이 아니다. 단지 깊이 묻히게 하는 시간일 뿐이다. 삿포로의 선교는 그런 ‘하나님의 겨울학교’이다. 눈 덮인 땅속에서 씨앗은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서 뿌리가 자라고 있다. 빠른 결실을 원한다면 이 도시는 실망을 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속도보다 깊다. “눈은 덮지만, 생명을 막지 않는다.” 삿포로의 교회는 그 진리를 몸으로 배우는 곳이다.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도, 하나님은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복음은 멈춘것처럼 보일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삿포로의 선교는 포기의 이야기가 아니다. 방법은 ‘속도’가 아니라 ‘깊이’에 있다. 우선, 삿포로의 복음은 ‘교회 밖’에서 피어난다. 일본 문화는 일상 속의 미(美)와 조화(和)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복음이 단절이나 대립의 언어로 들릴 때 마음을 닫는다. 그러나 복음은 문화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회복시키는 언어이다. 삿포로는 눈의 도시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겨울의 고요함 속에서 사유하고, 눈의 균형과 절제 속에서 미를 발견한다. 일본인의 미의식은 단순히 장식적 취향이 아니라, ‘질서와 조화의 철학’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 복음은 항상 ‘서양의 종교’로 남는다. 복음이 이 땅에 뿌리내리려면, 그 아름다움의 언어로 다시 번역되어야 한다. 예배의 음악이 지역 예술과 만날 때, 교회의건축이 홋카이도의 자연과 어울릴 때, 복음은 낯선 교리가 아니라 익숙한 조화로 들린다. 예를 들어, 삿포로의 대표적 행사인 ‘눈 축제(Snow Festival)’에서 교회가 자원봉사나 예술적 참여로 시민과 연결될 때, 신앙은 종교가 아닌 공동체의 일부로 경험된다. 또한 일본의 차문화(茶道)는 ‘정화(靜化)’와 ‘존중(敬意)’의 정신을 담고 있다. 그안에 이미 복음의 본질이 숨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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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코칭시대
지난 20년이 넘도록 급성장을 해 온 코칭은 이제 리더들을 위한 리더십의 한 형식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담과 비슷한 방식으로 단기간부터 장기간에 걸쳐서 주제에 따라서 진행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쁜 현대사회에서는 때로는 그러한 기간과 방식이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즉 그 보다 훨씬 더 빠르게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 짐에 따라서 즉각적인 피드백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오늘은 그동안 전통적으로 진행해 온 일반 코칭에서 지금 시대에 오히려 더 적용하기 좋은 새로운 개념의 마이크로 코칭으로의 진화 과정 및 특징을 살펴보고, 특히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 깊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일반 코칭에서 마이크로 코칭으로의 진화 마이크로 코칭은 전통적인 코칭 방식에서 진화하여 등장한 혁신적인 접근 방식으로,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는 데 있어더욱 세밀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제공합니다. 전통적인 코칭은 보통 1시간 이상의 긴 세션을 통해 진행되며, 코치와 피코치간의 깊이 있는 대화와 분석을 중심으로 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종종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는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수있습니다. 반면, 마이크로 코칭은 짧고 빈번한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이 필요로 하는 즉각적인 지침과 피드백을 제공합니다. 이는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개인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마이크로 코칭의 정의와 특징 마이크로 코칭은 전통적인 코칭 방식과는 달리, 짧은 시간 안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전통적인 코칭이 기본적으로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면 마이크로 코칭은 그보다 짧은 5분간의 대화나 채팅, 음성 메모,텍스트 기반의 질문 등으로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교실에서 쓸 수 있는 코칭으로는 수업 내용이나 규모 등을 소규모로축소해 관찰자가 교사의 수업 내용을 관찰하고 분석해 더 나은 방안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이크로 코칭은 지난 팬데믹 이후 비즈니스와 교육 분야에서 더욱 확산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기술의 발전과 데이터 기반 접근 방식 덕분에 가능해졌습니다. 이제 코치는 피코치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그에 맞춘 맞춤형 지원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개인화’를 넘어 ‘초개인화’라는 새로운 트렌드로 발전하고 있으며, 각 개인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 됩니다. 마이크로 코칭의 필요성 현대 사회는 빠른 변화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코칭 방식이 개인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운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마이크로 코칭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필요합니다. ▶ 효율적인 학습: 학습 내용이나 기술을 소규모로 축소하여 세밀하게 관찰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 즉각적인 피드백: 과제나 문제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 개인이 신속하게 해결책을 도출하고 실행 계획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 유연한 접근: 짧고 빈번한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의 상황에 맞춘 맞춤형 지원이 가능합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의 현황 미국에서는 마이크로 코칭이 이미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활용되고 있습니다. 세계적 기업들의 CEO들은 마이크로 코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글과 애플의 경영진들은 마이크로 코칭을 통해 팀원들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는 기업 전체의 성과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마이크로 코칭이 교육 및 비즈니스 분야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팬데믹 이후 원격 교육과 디지털 학습의 증가에 힘입어 에듀테크와 결합하여 더욱 발전하고 있습니다. 미국 에듀테크 시장은 2025년까지 2,52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 이후에는 더욱 광범위하게 활용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양한 교육 방법과 기술이 통합된 결과일 것입니다. 마이크로 코칭은 특히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 두드러진 효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 학습 향상: 짧고 집중적인 학습 경험이 학생들의 참여와 성취도를 높이는 데 기여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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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건강] “고령화 속 급증 ‘황반변성’…경고신호 놓치지 말아야”](http://impostman.mycafe24.com/wp-content/uploads/2025/09/AKR20241011089100530_03_i_P4.jpg)
[위클리 건강] “고령화 속 급증 ‘황반변성’…경고신호 놓치지 말아야”
[위클리 건강] “고령화 속 급증 ‘황반변성’…경고신호 놓치지 말아야”글씨·사물 구부러져 보인다면 초기 증상…”금연·운동하고 외출 땐 선글라스 권장” 황반변성 [대한안과학학회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눈의 황반은 시력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부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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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겨울학교, 삿포로
삿포로는 일본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대도시이자, 선교의 가장 외로운 전선이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곳에 발을 디뎠지만, 대부분 오래 머물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곳은 ‘선교의 겨울’이 길기 때문이다. 눈이 6개월을 덮는 도시처럼, 복음의 씨앗도 쉽게움트지 않는다. 그래서 삿포로는 여전히 선교적으로 추운 지역이다. 복음의 불씨가 닿지 않는 도시가 아니라, 닿아도 쉽게 붙지 않는 도시이기 때문인 것 같다. 눈이 6개월 이상 덮이는 북방의 땅처럼, 이곳의 영혼은 천천히 움직이고, 변화는 느리며, 신앙은 쉽게 뿌리내리지 않는다. 일본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의 1% 미만이다. 3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같다. 복음주의 신자는 약 0.3% 수준에 머문다. 홋카이도의 인구는 약 500만 명이지만, 그중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기독교인은 2만 명이 되지 않는다. 삿포로에 정기적으로 모이는성도는 1만 명 이하. 교회의 절반 이상이 30명 미만의 소형 교회이며, 목회자의 70%가 60세 이상이다. 이 숫자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그것은 ‘정체’라는 이름의 현실이다. 일본은 지난 50년간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안정 속에서도 영적으로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종교는 개인의 내면으로 밀려나고, 교회는 사회 담론에서 사라졌다. 젊은 세대는 신앙에 무관심하며, 교회는 고령화로 인해 세대 단절의 위기를 맞고 있다. 삿포로의 한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의 복음화는 마치 얼음 위에 새싹을 심는 일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 얼음 밑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뿌리를 자라게 하십니다.” 일본의 문화는 신앙을 고백하기 어렵게 만든다. ‘조화(和)’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종교적 차이는 불편한 주제가 된다. ‘다름’은개인의 용기로 해석되지 않고, 관계의 위협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일본인에게 신앙은 삶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의 취향이 된다. “나는 무종교입니다.”라는 표현은 부정이 아니라 일종의 예의로 여겨진다. 홋카이도는 개척지의 자립정신이 강하다. 신에게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해결하려는 삶의 태도가 깊이 뿌리내려 있다. 이런 문화 속에서 복음은 ‘도움의 언어’가 아니라 ‘간섭의 언어’로 오해받기도 한다. 실제로 한 일본인 신자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를 믿는 건 좋은 일일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그 말은 너무 큰 소리처럼 들립니다.” 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선교는 논리나 설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복음은 ‘보여지는 삶’으로만 이해된다. 교회의 설교보다교인의 태도가, 전도의 말보다 일상의 성실함이 먼저 마음을 연다. 그러므로 삿포로의 복음은 말이 아니라 ‘관계’로, 논쟁이 아니라 ‘신뢰’로 자란다. OMF 선교회는 일본을 “가장 헌신적인 선교사들이 가장 빨리 지치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일본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의 평균 체류 기간은 5년 미만이다. 언어의 장벽, 관계의 거리,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많은 이들이 지쳐 나간다. 그러나 역사는늘 그 ‘남은 자’를 통해 이어져 왔다. 1876년, 삿포로 농학교의 미국인 교수 윌리엄 S. 클라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Boys, be ambitious for Christ.” 그 짧은 한 문장이 일본 교회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의 제자들이 ‘삿포로 밴드’를 세우고, 일본 최초의 기독교 운동을 시작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적은 수를 통해 시대를 바꾸신다. 삿포로는 다시 그 말씀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땅이다. 겨울은 생명을 죽이는 계절이 아니다. 단지 깊이 묻히게 하는 시간일 뿐이다. 삿포로의 선교는 그런 ‘하나님의 겨울학교’이다. 눈 덮인 땅속에서 씨앗은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서 뿌리가 자라고 있다. 빠른 결실을 원한다면 이 도시는 실망을 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속도보다 깊다. “눈은 덮지만, 생명을 막지 않는다.” 삿포로의 교회는 그 진리를 몸으로 배우는 곳이다.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도, 하나님은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복음은 멈춘것처럼 보일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삿포로의 선교는 포기의 이야기가 아니다. 방법은 ‘속도’가 아니라 ‘깊이’에 있다. 우선, 삿포로의 복음은 ‘교회 밖’에서 피어난다. 일본 문화는 일상 속의 미(美)와 조화(和)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복음이 단절이나 대립의 언어로 들릴 때 마음을 닫는다. 그러나 복음은 문화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회복시키는 언어이다. 삿포로는 눈의 도시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겨울의 고요함 속에서 사유하고, 눈의 균형과 절제 속에서 미를 발견한다. 일본인의 미의식은 단순히 장식적 취향이 아니라, ‘질서와 조화의 철학’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 복음은 항상 ‘서양의 종교’로 남는다. 복음이 이 땅에 뿌리내리려면, 그 아름다움의 언어로 다시 번역되어야 한다. 예배의 음악이 지역 예술과 만날 때, 교회의건축이 홋카이도의 자연과 어울릴 때, 복음은 낯선 교리가 아니라 익숙한 조화로 들린다. 예를 들어, 삿포로의 대표적 행사인 ‘눈 축제(Snow Festival)’에서 교회가 자원봉사나 예술적 참여로 시민과 연결될 때, 신앙은 종교가 아닌 공동체의 일부로 경험된다. 또한 일본의 차문화(茶道)는 ‘정화(靜化)’와 ‘존중(敬意)’의 정신을 담고 있다. 그안에 이미 복음의 본질이 숨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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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 레즈비언이 대주교로 선출??
2025년 7월, 웨일스 성공회는 체리 밴(Cherry Vann)을 새로운 대주교로 선출했다. 그는 영국 교회사상 최초로 여성이며, 공개적으로 LGBTQ+ 정체성을 밝힌 인물이다. 언론은 이를 “포용의 진보”라며 높이 평가했고, 많은 이들은 교회가 다양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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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자리마저 위협받는 시대에
전 세계 곳곳에서 종교를 이유로 한 폭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 중심에 선 이들은 대개 힘없고 조용히 기도하는 이들이며, 피해자 중 상당수가 기독교 공동체라는 점은 시대의 역설을 드러낸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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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코칭시대
지난 20년이 넘도록 급성장을 해 온 코칭은 이제 리더들을 위한 리더십의 한 형식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담과 비슷한 방식으로 단기간부터 장기간에 걸쳐서 주제에 따라서 진행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쁜 현대사회에서는 때로는 그러한 기간과 방식이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즉 그 보다 훨씬 더 빠르게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 짐에 따라서 즉각적인 피드백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오늘은 그동안 전통적으로 진행해 온 일반 코칭에서 지금 시대에 오히려 더 적용하기 좋은 새로운 개념의 마이크로 코칭으로의 진화 과정 및 특징을 살펴보고, 특히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 깊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일반 코칭에서 마이크로 코칭으로의 진화 마이크로 코칭은 전통적인 코칭 방식에서 진화하여 등장한 혁신적인 접근 방식으로,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는 데 있어더욱 세밀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제공합니다. 전통적인 코칭은 보통 1시간 이상의 긴 세션을 통해 진행되며, 코치와 피코치간의 깊이 있는 대화와 분석을 중심으로 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종종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는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수있습니다. 반면, 마이크로 코칭은 짧고 빈번한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이 필요로 하는 즉각적인 지침과 피드백을 제공합니다. 이는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개인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마이크로 코칭의 정의와 특징 마이크로 코칭은 전통적인 코칭 방식과는 달리, 짧은 시간 안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전통적인 코칭이 기본적으로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면 마이크로 코칭은 그보다 짧은 5분간의 대화나 채팅, 음성 메모,텍스트 기반의 질문 등으로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교실에서 쓸 수 있는 코칭으로는 수업 내용이나 규모 등을 소규모로축소해 관찰자가 교사의 수업 내용을 관찰하고 분석해 더 나은 방안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이크로 코칭은 지난 팬데믹 이후 비즈니스와 교육 분야에서 더욱 확산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기술의 발전과 데이터 기반 접근 방식 덕분에 가능해졌습니다. 이제 코치는 피코치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그에 맞춘 맞춤형 지원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개인화’를 넘어 ‘초개인화’라는 새로운 트렌드로 발전하고 있으며, 각 개인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 됩니다. 마이크로 코칭의 필요성 현대 사회는 빠른 변화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코칭 방식이 개인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운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마이크로 코칭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필요합니다. ▶ 효율적인 학습: 학습 내용이나 기술을 소규모로 축소하여 세밀하게 관찰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 즉각적인 피드백: 과제나 문제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 개인이 신속하게 해결책을 도출하고 실행 계획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 유연한 접근: 짧고 빈번한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의 상황에 맞춘 맞춤형 지원이 가능합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의 현황 미국에서는 마이크로 코칭이 이미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활용되고 있습니다. 세계적 기업들의 CEO들은 마이크로 코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글과 애플의 경영진들은 마이크로 코칭을 통해 팀원들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는 기업 전체의 성과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마이크로 코칭이 교육 및 비즈니스 분야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팬데믹 이후 원격 교육과 디지털 학습의 증가에 힘입어 에듀테크와 결합하여 더욱 발전하고 있습니다. 미국 에듀테크 시장은 2025년까지 2,52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 이후에는 더욱 광범위하게 활용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양한 교육 방법과 기술이 통합된 결과일 것입니다. 마이크로 코칭은 특히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 두드러진 효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 학습 향상: 짧고 집중적인 학습 경험이 학생들의 참여와 성취도를 높이는 데 기여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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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선교탐정
대만 정탐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 사실은 – 대만 선교는 지금, ‘복음의 언어를 다시 배우는 과정’이라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복음은 보편적이지만 그 표현은 언제나 지역적이다. 하나님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시지만, 인간은 언어와 문화 안에서만 하나님을 이해한다. 그러므로 대만 선교의 본질을 단순하게 복음을 ‘전달’하는 데 두기 보다는, 복음이 현지인의 세계 속에서 다시 ‘태어나도록 돕는’ 영적 번역의 과정의 단계로 한 단계 더 올리는 것이 필요한 시기인것 같다. 대만은 아시아 복음화의 중요한 시험대다. 인구 약 2,330만 명 가운데 개신교인은 2.8%, 가톨릭을 포함해도 3-4% 선에 불과하다. 반면 불교 35%, 도교 33%, 민간신앙 20% 이상으로,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비(非)기독교 문화권에 속해 있는 실정이다. 대만의 종교 지도자들은 약 30만 명에 이르며, 그중 기독교 관련 지도자는 1% 수준에 불과하다. 복음은 존재하지만, 문화적으로 ‘주류 언어’가 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선교의 방향을 보여준다. 대만에서는 복음을 “진리의 논리”로 제시할 때보다 “관계의 언어”로 풀어낼 때 문이 열린다. 이 사실은 대만 사람들이 교리보다 신뢰를, 설득보다 공감을 먼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대만에서는 선교가 이론이 아니라 관계로 들어갈 때 복음은 흐른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차를 함께 마시며 서로를 나누고, 명절의 풍속을 이해하려고 해야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 자리에서 복음은 자연스럽게 피어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만에서의 오늘의 선교는 ‘정답을 전하는 선교’만 해서는 관계만 더 이상해지고 복음은 흘러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먼저 그 무엇보다도, ‘관계를 세우는 선교’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은 논쟁의 주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흘러가는 생명의 언어라는 사실이 대만의 사회에서는 더 잘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인간의 언어로 오신 것처럼, 대만 선교의 핵심은 성육신적 접근이 보다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즉, 대만의 문화와 정서, 언어의결 속에 들어가 복음이 그들의 감각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탐 결과 많은 선교사들이 ‘현지화(Localization)’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문화의 표면에 머무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언어를 배우고, 음식을 나누고, 의례를 관찰하는 수준의 적응은 문화적 친화일 뿐 내재화는 아닌 것이다. 복음이 문화 속으로 깊이 스며들려면, 현지화의 한계를 넘어 문화의 내재화(Inculturation)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적응이 아니라 ‘의미의 번역’이다. 이렇게 복음의 본질을 변하지 않게 하면서도, 표현은 대만적 맥락 속에서 새롭게 탄생시키는 일에 더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예를 들어, 대만의 제사 문화는 그 대표적 예다. 외부에서는 조상숭배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감사와 기억’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가 있다. 복음은 그것을 정죄하기보다, 그 안의 의미를 회복시킬 수 있다. “감사의 제사”로서의 예배, “기억과 은혜”의신앙으로서의 기독교적 재해석은 대만 문화 속에서 복음이 스스로를 번역해내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이때 복음은 낯선 종교가 아니라 ‘그들의 실재 이야기’가 될 것이다. 복음의 내재화는 언어의 문제이기도 하다. 단순히 중국어나 대만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가 품고 있는 정서의 결을읽는 것이다. 대만어의 “慢慢來(만만라이, 천천히 하자)”라는 표현처럼, 대만 문화는 서두르지 않고 관계를 쌓아가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복음이라는 언어는 어떠할까? 역시 복음도 그렇게 “천천히 스며드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빠른회심보다 깊은 뿌리를 목표로 하는 것이 전략적이며, 지속가능하다. 통계적으로도 이러한 접근은 효과적이다. 최근 대만 내 한 조사에 따르면, 관계 중심형 선교(relationship-based ministry)를경험한 이들의 복음 수용률은 일반 전도 대상자보다 약 3.5배 높게 나타났다. 또한 공동체 중심 선교에 참여한 청년층(20~35세)의 지속적 교회 참여율은 62%로, 이벤트 중심 전도(단기 사역) 참여자의 18%를 크게 웃돌았다. 이러한 숫자는 분명히 말해준다 — 즉, 사람들은 관계에서 복음을 받아드린다는 것이다. 문화의 내재화는 또한 사회적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대만은 고령화율이 18%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했고, 청년 세대의취업 불안과 도시 외로움이 심화되고 있다. 원주민 지역은 교육·빈곤·문화 단절 문제로 신앙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복음은 단지 개인 구원의 메시지가 아니라, 공동체 회복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교회가 사회의 상처를 끌어안는 통전적(Integral) 선교로 나아갈 때, 복음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한다. 이를 위한 전략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첫째, 도시형 청년 선교 모델이 필요하다. 카페, 팟캐스트, 유튜브, 미디어 아트 등에서복음이 ‘문화 콘텐츠’로 번역되어야 한다. 감성 중심의 대만 청년들에게 교회는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다가가야 한다. 둘째, 원주민 지역 사역은 공동체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예배보다 교육, 가르침보다 함께 살아가는 모델이 우선이다. 셋째, 리더십 전환이 필요하다. 외국 선교사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현지 지도자(Indigenous leadership)를 세우는 것이 장기 전략의 핵심이다. 현재 대만 기독교 지도자 중 현지 출신은 약 64% 수준이지만, 농촌 지역에서는 30%에 그친다. 향후 10년 내8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넷째, 교회 간 네트워크 협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한국, 일본, 동남아 교회가 자원을 나누고 공동 훈련을 실시하는 아시아 선교 허브 구축이 절실하다. 결국, 대만 선교의 본질은 빠른 성장보다 깊은 ‘내재화’ 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이 이론으로 제시될 때는 거부되지만, 관계와 문화로 흘러갈 때 사람들의 마음이 더 열리기 때문이다. 복음이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상징으로, 그들의 삶의 리듬 속에서 증언될 때, 그것은 외래 종교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가 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복음이라는 것은 단지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번역되고, 공동체 속에 내재화될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는 점을볼 때 – 대만 선교는 더이상 단지 복음을 가르치는 일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 땅의 언어로 말씀하신다는 점을 기억하고, 대만의 문화와 노래와 눈물 속에서도 하나님 자신을 드러낼 것이기에, 우리는 그들의 말로, 그들의 노래로, 그들의 눈물로 나는 다시 태어나도록 돕고 그 길을 개척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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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민중신학, 세계 좌파와 청년 세뇌의 위기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한 위기는 단순한 교리 논쟁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상적 침투이다. 세계 좌파세력과 교회 내부의 특정 단체들이 긴밀히 맞물려 움직이며, 복음의 본질을 흐리고 교회를 정치적 집단으로 바꿔 놓고 있다. 물론 예수님이 우파란 얘기는 아니다. 철저하게 그 분은 좌파 혹은 우파 정치를 옹호하지 않으신 분이다. 그분은 영적으로만 해석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독교 좌파의 중심에는 가톨릭 산하 기관인 예수회, 한국에서 발전한 민중신학, 그리고 청년을 겨냥한 좌파 기독 단체들이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한 위기는 단순한 교리 논쟁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상적 침투이다. 세계 좌파세력과 교회 내부의 특정 단체들이 긴밀히 맞물려 움직이며, 복음의 본질을 흐리고 교회를 정치적 집단으로 바꿔 놓고 있다. 물론 예수님이 우파란 얘기는 아니다. 철저하게 그 분은 좌파 혹은 우파 정치를 옹호하지 않으신 분이다. 그분은 영적으로만 해석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독교 좌파의 중심에는 가톨릭 산하 기관인 예수회, 한국에서 발전한 민중신학, 그리고 청년을 겨냥한 좌파 기독 단체들이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한 위기는 단순한 교리 논쟁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상적 침투이다. 세계 좌파세력과 교회 내부의 특정 단체들이 긴밀히 맞물려 움직이며, 복음의 본질을 흐리고 교회를 정치적 집단으로 바꿔 놓고 있다. 물론 예수님이 우파란 얘기는 아니다. 철저하게 그 분은 좌파 혹은 우파 정치를 옹호하지 않으신 분이다. 그분은 영적으로만 해석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독교 좌파의 중심에는 가톨릭 산하 기관인 예수회, 한국에서 발전한 민중신학, 그리고 청년을 겨냥한 좌파 기독 단체들이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한 위기는 단순한 교리 논쟁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상적 침투이다. 세계 좌파세력과 교회 내부의 특정 단체들이 긴밀히 맞물려 움직이며, 복음의 본질을 흐리고 교회를 정치적 집단으로 바꿔 놓고 있다. 물론 예수님이 우파란 얘기는 아니다. 철저하게 그 분은 좌파 혹은 우파 정치를 옹호하지 않으신 분이다. 그분은 영적으로만 해석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독교 좌파의 중심에는 가톨릭 산하 기관인 예수회, 한국에서 발전한 민중신학, 그리고 청년을 겨냥한 좌파 기독 단체들이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한 위기는 단순한 교리 논쟁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상적 침투이다. 세계 좌파세력과 교회 내부의 특정 단체들이 긴밀히 맞물려 움직이며, 복음의 본질을 흐리고 교회를 정치적 집단으로 바꿔 놓고 있다. 물론 예수님이 우파란 얘기는 아니다. 철저하게 그 분은 좌파 혹은 우파 정치를 옹호하지 않으신 분이다. 그분은 영적으로만 해석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독교 좌파의 중심에는 가톨릭 산하 기관인 예수회, 한국에서 발전한 민중신학, 그리고 청년을 겨냥한 좌파 기독 단체들이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한 위기는 단순한 교리 논쟁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상적 침투이다. 세계 좌파세력과 교회 내부의 특정 단체들이 긴밀히 맞물려 움직이며, 복음의 본질을 흐리고 교회를 정치적 집단으로 바꿔 놓고 있다. 물론 예수님이 우파란 얘기는 아니다. 철저하게 그 분은 좌파 혹은 우파 정치를 옹호하지 않으신 분이다. 그분은 영적으로만 해석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독교 좌파의 중심에는 가톨릭 산하 기관인 예수회, 한국에서 발전한 민중신학, 그리고 청년을 겨냥한 좌파 기독 단체들이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한 위기는 단순한 교리 논쟁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상적 침투이다. 세계 좌파세력과 교회 내부의 특정 단체들이 긴밀히 맞물려 움직이며, 복음의 본질을 흐리고 교회를 정치적 집단으로 바꿔 놓고 있다. 물론 예수님이 우파란 얘기는 아니다. 철저하게 그 분은 좌파 혹은 우파 정치를 옹호하지 않으신 분이다. 그분은 영적으로만 해석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독교 좌파의 중심에는 가톨릭 산하 기관인 예수회, 한국에서 발전한 민중신학, 그리고 청년을 겨냥한 좌파 기독 단체들이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한 위기는 단순한 교리 논쟁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상적 침투이다. 세계 좌파세력과 교회 내부의 특정 단체들이 긴밀히 맞물려 움직이며, 복음의 본질을 흐리고 교회를 정치적 집단으로 바꿔 놓고 있다. 물론 예수님이 우파란 얘기는 아니다. 철저하게 그 분은 좌파 혹은 우파 정치를 옹호하지 않으신 분이다. 그분은 영적으로만 해석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독교 좌파의 중심에는 가톨릭 산하 기관인 예수회, 한국에서 발전한 민중신학, 그리고 청년을 겨냥한 좌파 기독 단체들이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한 위기는 단순한 교리 논쟁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상적 침투이다. 세계 좌파세력과 교회 내부의 특정 단체들이 긴밀히 맞물려 움직이며, 복음의 본질을 흐리고 교회를 정치적 집단으로 바꿔 놓고 있다. 물론 예수님이 우파란 얘기는 아니다. 철저하게 그 분은 좌파 혹은 우파 정치를 옹호하지 않으신 분이다. 그분은 영적으로만 해석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독교 좌파의 중심에는 가톨릭 산하 기관인 예수회, 한국에서 발전한 민중신학, 그리고 청년을 겨냥한 좌파 기독 단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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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의 역할
과거의 청년들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같은 질문을 붙잡고 밤을 지새웠다. 그 질문은 방향을 잃은 시대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붙드는 끈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들은 다르다. 그들은 더 이상 존재의 의미를 묻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덜 불안하게 살 수 있을까.” 세상은 질문의 깊이를 바꾸어 놓았다. 철학의 자리에는 생존이 들어섰고, 사색의 시간은 경쟁으로 대체되었다. 그런데 이제 성공은 ‘무엇을 가졌는가’로 정의되는 것 같다. 돈, 스펙, 인맥, 그리고 더 많은 팔로워. 인생의 항아리는 끝없이 채워야 하는 그릇이 되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채울수록 허기가 커진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는데도 더 불안해한다. 결국 인생의 본질은 ‘채움’이 아니라 ‘선택적 비움’에 있다. 무엇을 가지느냐보다 무엇을 포기하느냐가 그 사람의 품격을 만든다. 이 간단한 진리를 잊은 사회가 지금의 세상이다. 인생을 우연의 연속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우연만으로 설명하기엔 삶은 너무 치밀하다. 그 안에는 분명한 서사가 있다. 다만 그것을 ‘읽어내는 능력’을 잃은 사람들이 많을 뿐이다. 방향을 잃은 청춘들은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달리고 있다. 사회는 그들에게 쉼표를 허락하지 않는다. 잠시 멈추면 낙오자로 불리고, 질문을 던지면 비효율적이라 평가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묻기를 멈추고, 생각 대신 속도를 선택한다. 하지만 속도가 빠를수록 방향은 더 쉽게 잃는다. 청춘은 결국 ‘선택의 계절’이다. 이 시기에 내리는 선택은 단지 직업을 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질서를 결정짓는 일이다.문제는 올바른 선택을 하려면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그 기준을 빼앗았다. 비교와 효율이 기준이 되어버렸고, 타인의 눈이 나의 나침반이 되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성공의 문 앞에서 허무를 경험한다. 선택의 기준이 외부에 있을 때,인생은 결국 타인의 기대를 따라 사는 복제품이 된다. 삶의 의미는 고난이 없는 곳에서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와 실패 속에서 방향이 드러난다. 인생은 우리가 피하고 싶은 순간들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자신이 왜 이 길을 걷는지를 아는 사람은 흔들리더라도 무너지지 않는다. 의미를 아는 사람은고통 속에서도 길을 본다.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확신이 아니라, 의미를 읽어내는 감각이다. 이제 그들을 향한 기성세대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다. 그들의 절망을 ‘요즘 애들’이라 말하며 가볍게 넘기지 않는 것, 그리고 그들 속의 가능성을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냉소로 덮지 않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더 이상 앞에서 이끌 리더가 아니라, 옆에서 함께 걸어가야 할 세대다. 당신이 이미 걸어온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당신의 실수는 그들에게는 지도가 될 것이고, 당신의 실패는 그들의 안전벨트가 될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세대를 잇는 진심은 여전히 느리게 자란다. 청년들은 완벽한 어른을 원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고민을 끝까지 들어줄 한 사람, 비난 대신 이해로 바라봐 줄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기성세대의 사명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다음 세대가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답’이 아니라 ‘거울’로 건네는 일이다. 우리는 가르치는 시대에서 함께 배우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그 여정 속에서 청년과 기성세대는 서로의 거울이 되어, 각자의 얼굴을 비추며 함께 성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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